서점에 가서 진열되어 있는 책을 둘러보다 “종이시계”를 발견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시계는 어떤 것일까?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어서 궁금증이 일어났다. 책의 뒷면을 보니 “중년 부부의 결혼과 사랑 이야기”라는 짧은 글귀가 눈에 띈다. 결혼과 종이시계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중년 부부인 아이러와 매기는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매기는 감정적이고 정이 많아 때로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을 그르치는 반면, 아이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결혼 초에는 “우리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에 들어섰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가던 인생의 중반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슬픔이 밀려온다. 매기는 꿈꿔왔던 결혼과 현실이 달라 슬퍼하고, 아이러는 무능력한 형제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하며 살아와 외롭기만하다.
아이러와 매기의 만남과 결혼. 자유분방한 아들 제시와 야무진 딸 데이지. 아들의 결혼과 이혼. 손녀 딸 리로이를 바라보는 측은한 마음. 아이러와 매기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돌아보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하지만 다른 모습을 이해해주며 눈물을 닦아주고, 외로움으로 굽은 등을 따뜻이 안아주는 사람 부부라는 이름의 아이러와 매기이다.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아이러와 매기의 결혼생활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들의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갈등. 자녀 양육의 문제.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고개를 쳐드는 외로움. 힘든 순간마다 힘이 되는 따뜻한 위로. 문화적 차이를 막론하고 가족애(愛)의 기본적인 모습은 공통적인 것 같다.
젊은 날의 설레이는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이해주는 마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그 자리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고 있다. 함께 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담겨져 있어 즐거움을 주기도 하며, 필요할 때면 자신의 몸을 잘라 쉼터를 제공해 주는 아낌없는 나무말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며 울고 웃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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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풍성하게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이러가 그냥 뒤돌아서 나가버릴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매기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숙여 두 손으로 감쌌다. 매기는 울음을 멈췄다. “아이러?” 그녀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여보, 왜 그래요?” 그녀는 일어나 몸을 굽혀 그를 껴안았다.
그러고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대답은 그의 등이 하고 있었다. 구부정하고, 따뜻하고, 깡마른 등줄기를 따라 마디마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 대답을 먼저 느꼈다. 아이러도 매기와 똑같은 이유로, 매기만큼 슬픈 것이다.
그도 외롭고, 피곤하고, 희망이 없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매기의 어깨 위로 머리를 떨구었다. 그녀는 아이러를 꼭 껴안고, 그의 광대뼈에 얼굴을 문질렀다. 다 잘될 거예요. 괜찮을 거예요. 400페이지
되풀이 되는 쇼라. 계속되는 똑같은 논쟁, 똑같은 비난들. 똑같은 농담, 애정어린 말, 또 결혼을 지키려는 성실성. 위로하는 행동, 따뜻한 말들.이런 것들을 부부가 아니면 그 누가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전혀 잊혀지지 않고,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응어리 또한 있으리라. 매기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이러가 기뻐하지 않았던 일, 장모 앞에서 매기가 아이러를 변호하지 못했던 일...229 페이지
책 표지는 독일 베를린의 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사]이다.책을 가로로 놓고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 보면 파스텔톤 하늘과 대조되어 아주 깊을 것 같은 바닷가의 짙은 청색. 그리고 홀로 바닷가에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검은 옷의 수도사가 보인다. 책 제목과 책 표지에서는 왠지모를 아련함의 느낌이 풍겨져나와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Jonh Bannville의 작품은 처음이었고 그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전혀 없다. 단지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벨문학상과, 공쿠르상, 그리고 부커상 중에서 이 책이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로 책의 첫 글귀는 시작된다. 첫 문장은 짧고 명료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책의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독을 해야 할 만큼 책의 문장과 내용은 간단하지가 않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그 이전의 과거 3가지 시간이 문단의 바꿈없이 동시에 펼쳐지며 수식어가 많이 들어간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혹여나 번역자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Amazon에 들어가 이 책의 원제인 : The Sea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독자들의 평점이 5점 만점에 4점이었고 대부분 John Banville의 수려한 문체와 아름다운 글귀, 그리고 투명하고 담담한 독백에 대한 칭찬을 했다. (수식어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번역하면서 느낌이 약간은 왜곡되긴 하지만 그 문제가 크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John Banville의 문체를 원저로 느껴보고 싶다.
맥스는 아내 애너가 암으로 1년간 투병하고 죽은 후 어린시절을 보냈던 바닷가의 작은 마을 시더스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에게 신처럼 보였던 그레이스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의 이별...
가슴 깊이 뭍어 두었던 그 여름의 바다...
중년이 되어 맞이한 그의 아내 애너와의 이별...
정독을 해서 존 반빌의 문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이 책은 정말 매력적인 책으로 다가온다. 상실감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존 반빌의 소설은 난해하긴 하지만 힘이 있다. 책을 읽고 바다가 품고 있는 두 가지의 의미인 '포용과 소멸' 에 대해 그리고 이것과 연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이 두가지의 의미 속에서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볍게 읽히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모든것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있을 것 같다. 빛나는 가치는 누구에게나 쉽게 보이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 책을 여러번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꽂이 한편에 이 책을 다시 꼽아 놓는다. 언제라도 꺼내어 읽으면 책 표지의 푸른 바다는 어서 오라며 나를 맞이해 줄 것 같다.
[바닷가의 수도사] 그림에 대한 신문기사
경향신문 : 2007년 3월 30일 [천천히 사유하기]무한성의 경험(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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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
같은 노력을 투자했을 때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배우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내게 있어 역사란 분야는 늘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늪과 같은 영역이다.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노력을 하지만 흥미도 생기지 않고 노력한 시간에 비해 그 효율성은 높지 않다.[스파르타 쿠스의 죽음] 이 책을 과연 내가 다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에 대해 독자들은 막스 갈로가 서둘러 책을 쓰고 또 번역자가 서둘러 번역을 한 느낌이 강하다고 했다.
로마 시대에 살았던 노예들의 왕 [스파르타쿠스]는 기대이상의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아울러 로마 시대의 사회상과 내가 알지 못했던 굳이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던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의 영역을 넓혀주었던 고마운 책이었던 것 같다.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동력자 10만명의 노예들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는 어떤 것일까?
자신의 삶이 없이 로마 시민의 손과 발이 되어 살고 있던 그들은 스파르타쿠스라는 노예의 왕을 만나 그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며 어떠한 향후에 보복이 있을지 그리고 그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 할 것을 알면서도 자유를 향한 통로로 발을 내딛었던 수 많은 사람들...
로마 시민의 잔혹한 행위성 앞에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한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그렇게 변화된 것일까? 답을 찾으려 했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답 없는 질문일 것 같다.
근데 왜 이렇게 인간은 잔인한 것일까?
고대 로마는 극도로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매우 앞섰지만 앞편으로는 사악한 야만 행위를 저질렀던 사회였다. 현대 사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삶을 통해 과거를 보며 지금 현시대를 다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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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노예도, 주인도 존재하지 않네. 한 사람은 복종하고 한 사람은 명령하며,
한 사람은 즐겁게 산다고 믿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죽지. 신이 심판을 내리실 때는
주인과 노예가 동등해지는 거야. p66
물은 물을 향해 흐르는 법이지. 각자 자기 나라를 향해, 자신의 땅을 향해 가야 해.
나는 트라키아로 돌아가 나의 숲을 자유롭게 걷고 싶어.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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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죽음의 가면 |
Edar Allan Poe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애너벨리라는 아름다운 시를 알게되면서였다. 사랑하는 연인이 떠난 후 그녀를 추억하는 마음을 담은 애틋한 시라서 더 애절하게 느껴졌었 던 것 같다. 그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무지해서인지 몰라도
애드거 알랜 포우는 서정적인 느낌의 글을 쓰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얼마 전 붉은 죽음의 가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애드러 알랜 포우의 또 다른 면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책 한권은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엽기적이고 광기어린 분위기로 채워져있었다. 애드거 알랜 포우의 또 다른 면을 본 듯 했다. 사람에게는 동전의 양면 처럼
선하고 아름다운 부분과 괴기스럽고 흉악스러운 분위기가 공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괴기스러움 속에서도 14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동안 흉악스럽다기 보다는 애드거 알랜 포우의 천재성을 더 많이 보고 느꼈었던 것 같다. 그의 내면안에 숨겨진 아름다운과 순수성이 그의 외면으로 표출된 광기어린 모습과 조화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의 글에 마력적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젊은 날의 불행과 결혼 생활 등 순탄치 않는 생활은 그를 광기로 몰아 넣었고
그의 글 속에는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직사각형의 상자"를 읽으면서 그는 젊은 날에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던 아내를 생각하며 그 글을 썼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직사각형의 상자"를 읽으면서 예전의 애너벨리를 읽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 났다.그의 기이한 면에 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지만 짧은 분량의 단편 소설에 무리 없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자신만의 색채를 강하게 풍기는 문체로 자신 만의 글을 꽉 채운 애드거 알랜 포우는 천재가 틀림이 없다.
어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를 봤다.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인 영어 배우기 열풍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 중에는 강남의 영어 유치원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달 수강료가 적게는 90만원에서 200만원에 다다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에게 영어 유치원과 피아노 등의 기본적인 것만 가르친다면 한 아이에게 백만원 이상의 사교육비가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영어 문제에 한정 짓지 않고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사교육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는 내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누나의 도움을 빌렸는지 까만색 색지에 중간 중간에 칼로 오려서 창문을 만들었고 카드를 펼치면 클립으로 고정시킨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나왔다. 그 친구의 누나 손재주는 대단했던 것 같다. 카드를 받고 감동을 했지만 이내 어려움이닥쳤다. 내용이 다 영어로 쓰여져 있던 것이었다. 나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누나의 도움을 받아 정성스레 카드를 만들고 영어로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내가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hi!, Merry christmas 뿐이었다. 다음날 그 친구는 내게 카드 내용을 이해했냐고 묻기에 솔직하게 아버지가 그 뜻을 알려줬다고 이야기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 남들보다 늦었지만 별 탈 없이 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에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곳을 꼽아 보자면 강남과 분당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강남에 거주하고 있고, 직장은 분당으로 다니고 있는데 퇴근길 분당의 탄천을 지날 때면 종종 6~7살 짜리의 남자 아이들이 소그룹을 이뤄 탄천변에서 인라인스케이트와 축구 강습을 받는 것을 보곤 한다. 뛰어노는 것 까지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한 자녀 밖에 낳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지금은 직장에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지만, 결혼을 해서 집에서 아이들을 전적으로 돌봐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예전부터 주저없이 Home Schooling을 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Home Schooling이라는 대안을 생각한 것도 아니고 자식의 교육에 투자하는 돈이 아까워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다. 후에 나의 아이가 예술적인 분야보다는 지식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기를 바라는 것을 보면 똘똘한 자식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렇다면 왜 나는 Home Schooling을 생각해왔는가?
백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대기 이전에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백만원을 투자하여도 학습에 대한 열의가 없다면 아이에게는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나는 자식에게 할 만큼 다 했다."는 면죄부를 얻는 대가 밖에 되지 않는다. 꼭 돈으로 해결하지 않더라도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가서 현장 학습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피아노나 플릇을 집에서 가르쳐주고,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통해 흥미를 유발시켜 스스로 계획을 짜고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옮기지 않는 한 내 생활 영역은 강남 또는 분당이 될 것인데 내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이 곳의 치열한 교육열 속에서 나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지만 요즘 시대에는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라고도 말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식의 수준이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되는 시대라는 그들의 말에 동조는 하지만 사교육만이 아이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 보다는 아이를 품에 따뜻하게 안아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밑 바탕인 사람 됨됨이를 가르친 후, 부모가 공부하는 모범을 보이는 것을 통해 지식적인 면을 가르쳐 주고 싶다. 생각을 조금 바꾸면 사교육비로 수백만원의 대가를 치르며 홍역을 앓는 것이나 부모가 열심히 노력하여 지식을 습득하고 지식을 자식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나 방법상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으나 2006년 말 부터 관심을 가졌다.
주된 이유는 회사 동료들의 집값 상승 이야기가 연이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분양 받은 아파트의 가격이 몇 달사이에 몇 천만원씩 올랐다는 이야기에
나름 월급을 받아 알뜰하게 적금을 들며 만족하던 마음이 싹사라졌다.
몇 년간 아껴쓰며 모았던 나의 저축액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몇 달사이에 아무런 근로의 대가 없이 손에 쥐어지다니...
재테크도 능력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시작했다. 그리고 1차적으로 간접투자인 펀드를 시작했다.
작년 11월 봉쥬르차이나에 소액을 3개월 불입 후 3개월간의 수익율이 5%에 이르자
2007년 1월 모아둔 돈 일부를 봉쥬르차이나에 거치식으로 넣었다.
3월까지 -10% 까지 빠져 한동안 속상하기도 했지만
언제그랬냐는 듯이 요즘에는 20% (연수익률로 환산을 하면 45%)까지 오르고 있다.
주식이 1800까지 가면서 소비 심리가 살아나고 너도 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세태를 보면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사실 돈이 있으면 편하다. 없으면 불편하고...
열심히 저축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도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경제 상황을 나름대로 분석하며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더 하겠지!
봉쥬르는 25%까지 오르면 환매 예정.
강점에 올인하라도널드 클리프턴 외 지음, 홍석표 옮김/솔로몬북 |
| 며칠전 회식을 하면서 직장 상사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때 부모님이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말만 하는데 자녀들은 실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효과적인 방법은 10년 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머리 속에 그려보게하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점검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 때에는 전인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뒷쳐지지 않게 하는 것이 맞고 대학에 들어가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는 그 분야가 다른 사람 비해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이므로 강점을 키워나가는데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강점에 올인하라.] 이 책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Knee Jerk reaction으로 강점에 집중을 하다보면 탄력이 생겨 더욱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단점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잘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도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이것 하나만 고치면 다 좋은데..." 그래서 더욱 그 사슬에 억매여 그 부분을 개선하려는데 더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 그 누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작심 3일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내가 가진 단점들에 연연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장점에 집중하기고 그것을 재능으로 키워나가기로 다짐해본다.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생수의 은혜강준민 지음/두란노 |
| 살아가면서 늘 기쁜 일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되돌아 보면 희노애락(喜怒愛樂)을 경험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즐거웠던 어느 순간을 되돌아 보면 그 기쁨이 사라졌던 일도 있었고, 슬펐던 어느 순간을 되돌아 보면 기쁜 일로 변해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며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하나님이 내 인생에 있어 선한 것을 예비하고 계시고 내 발걸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이러한 희망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자신을 이겨내게 해 주는 커다란 힘이되어준다. 신앙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던 것은 '물'을 통해 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졌고 삶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존재인 물!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늘 곁에 있지만 존재감 없이 스며들어 있는 존재! 물은 생기가 없는 곳에 생기를 불러 일으키고 더러운 것을 깨끗게 하는 힘과 막힌 것을 뚫어 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물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손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강할 것 같지 않은 작은 물방울이 모이면 바위도 뚫을 수도 있고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난한 일상의 생활 그 안에서 있는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을 때 이 책을 읽어서인지 마음 깊이 와 닿지는 않았던 부분들도 있었다. 얼마전 읽었던 신앙서적을 덮고 나서의 느낌처럼 책이라기 보다는 설교집 묶음집이 더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내용이 많아서였던 것일까?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읽었으면 더 마음에 와 닿았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생수가 아니어도 지금의 평안함이 신선함으로 지속되어지기는 생수의 은혜가 내게도 임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덮는다. |
Yes를 받아내는 비즈니스 화술오쿠시 아유미 지음, 이윤혜 옮김/글로연 |
|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할 일도 생기고 업무를 조율하면서 나의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 많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긴장을 해서 몇 주 전부터 스트레스 받기 일쑤이고, 업무 조율을 하다가 내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답답함에 은근 슬쩍 화가 나려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이 두가지 기술 만큼은 시간에 비례해서 성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늘지 않는 프리젠테이션 기술과 협상의 기술은 회사 생활에 있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일정부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협상의 기술에 있어 무엇인가 도움을 받고 싶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업직에 근무하지 않아 상대를 설득시켜야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간 준비해온 일에 대한 진척 상황이나 최종 결과물을 보여주는 등의 프리젠테이션은 자주 한다. 때로는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발표를 끝내고 나서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청중의 반응을 굳이 파악해보지 않아도 그날의 성과에 대해서는 발표한 사람이 제일 민감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발표를 해서 반응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늘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단 한가지이다. "나의 의견을 상대에게 수용시키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 한 문장으로 표현을 해 놓으니 쉬워보이지만 그것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발표를 잘하고 못하고 상대를 설득시키고 시키지 못하고의 기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겸손하되 비굴하지는 않게 내가 누구인지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 비법이다. 핵심 키워드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eye contact, 당당하게 내 자신 소개, 차분하게 대화, 경청, 충분한 준비, 여유, 긍정적인 대화법 상대와 나를 win-win 하게 만드는 assertive 화법을 이용해보자! ----- 결코 상대를 밟고 올라서거나 상처주지 않는 것. 질문을 많이 하는 것. 담담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어설티브 화법이다. 그래서 협상과 교섭을 원만하게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설티브 화법을 배우는 궁극적인 목표이다.8페이지 |
행복한 남편의 비결스콧 할츠만.테레사 포이 디제로니모 지음, 한진영 옮김/두드림 |
| 어린이날 친구와 그녀의 3살짜리 딸과 근처의 공원으로 소풍을 갔었다. 5월의 따뜻한 햇빛과 선선한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복잡한 놀이 동산을 피해 공원으로 소풍을 온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들이 많았는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에는 행복함이 있었다. 5월의 휴일날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은 외로운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생겼었던 것 같다. 소풍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친구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혼이라는 것 해보면 별 것 아니야. 오늘 나는 즐거웠는데 너는 심심했던 것 아니었는지 모르겠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 속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녀는 부부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인간은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 옆에 영혼의 동반자가 있으면 행복감을 느낄수 있을까?' 독신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남여 관계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모범 답안은 있지만 그것을 적용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여서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내게는 와 닿지가 않는것이 사실이지만 간접경험으로 내린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30여년을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온 남녀가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집에 바래다 주는 길 보내기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고 늘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이 사람이라면 행복과 어려움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논리라면 함께 살면 행복한 일들이 지속되어야 하지만 성장한 가정의 분위기나 살아온 방식들의 미세한 차이가 그 틈을 만들어 행복과 갈등을 공존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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