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
| [2004년 3월 31일에 쓴 글] 2002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많이 힘겨웠던 시간이였다. 2002년 5월. 봄은 왔지만, 나는 봄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간을 통해 많이 성숙하고 자라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내 소명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추상적이기만 했다. 그 당시 내가 원했던 것은 소명 이런 거창한 것 보다는 현실의 구체적인 방향 제시를 추구했고, 'A는 B' 라는 어떤 명쾌한 가르침을 원했던 조급함이 있었다. 책을 읽었다 다시 덮었다 하기를 여러 번하였고 끝내 나는 소명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얼마전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 안되는 책-대부분이 선물 받은 것이다.- 을 보며, 담겨진 추억들을 떠올리다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예전부터 내게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갈망하는 마음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었고, 나에게 해당하는 참된 진리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 찾으려 할 때마다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나를 지으신 분. 나를 창조하신 분. 그분의 소명에 따라 그 부르심에 응답을 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르침이 될 수 있을까?'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원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명이라는 주체를 통하여 삶의 기본적인 틀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꿈, 자만심, 돈, 이기심, 인생이라는 여정, 나태함 등 소명과 상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소명을 가지게 됨으로써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나의 비전과 성취한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 때문에 좌절을 느낄 수 있다. 혹은 당신의 인생 이력서가 타협과 실패와 배신과 죄로 얼룩져 있어서 우울함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장막이 걷히고 당신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말라." 소명 中 최후의 부르심... "모든 사람은 꿈을 꾸지만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밤에 먼지 쌓인 마음의 한 구석에서 꿈을 꾸는 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한 낮에 꿈꾸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실제로 행동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Lawrence "Seven Pillars of wisdom 소명의 특성과 목적은 가장 귀가 멀고 둔감한 자를 제외한 모든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마음과 영혼을 전율케 한다. 그리고 나의 소명은 내 삶의 나침판이 될 것이며, 밤에 꾸는 꿈이 아니라 한 낮에 꾸는 소명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다짐해 보는 내 삶과 인생에는 희망이 있다. |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홍성사 <2004년 3월 22일에 쓴 글> |
| C.S Lewis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였던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 까지(Till we have faces)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C.S Lewis는 어떤 얼굴을 말하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한 책. 국내에 번역된 C.S Lewis의 책은 몇 권 되지 않은데다가, 이 책의 경우에는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골룸 왕국의 첫 째 공주인 오루알. 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는 못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남성과 같은 체격을 가지고 있다. 오루알이 아끼고 사랑하는 이복 동생 이스트라(또 다른 이름인 사이키)는 여신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고 오루알은 그런 사이키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아껴주며 그녀를 위한 조언을 한다. 오루알은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사이키를 잃고 난 후, 그 외로움을 잊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한다. 오루알은 얼굴은 못생겼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에는 성공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무술을 연마하여 왕녀로서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렸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밤 늦게 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는 여성으로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열등감과 외로움이 늘 존재하고 있었다. 사이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고 판단했던 사랑이었다. ('학'과 '여우'의 이솝우화가 잠깐 생각나기도 했다.) C.S Lewis가 묘사한 오루알의 내면 세계의 모습은 너무나 섬세해 놀라울 정도였다. 남자들은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여자의 내면 세계와 심리를 어쩌면 그렇게 잘 표현하고 있을까? 감탄! (이 작품은 60세에 만나 결혼한 Joy 의 영향이 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랑은 너무나 깊어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사랑은 너무나 넓어 그 품을 다 볼 수 없다. 사랑은 수 백 수 천가지의 얼굴을 지니고 있어 감히 '이것이다'라고도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거대한 사랑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진실한 인간이다.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으면서 사랑의 품에 안겨 사랑이 되어가는 사람이다. 사랑의 눈을 나에게로가 아니라 너에게로 향하게 할 때 사랑의 열정을 생명에로 향하게 할 때 그는 사랑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알게 될것이다. 책 표지에 쓰여져 있어 제일 처음 읽었던 글 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책 장을 덮고 나서는 이 짧은 글이 이 책의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아픔과 고뇌와 사랑을 겪게 된다. 자신의 상처들을 감추기 위해,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신을 원망하지만 신은 대답 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신을 대면하였을 때, 우리는 두려움과 상처속에서 그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 속에 있는 사랑의 모습을 보게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얼굴을 형성해 나가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닌지.. 신의 성품을 닮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내가 평생 추구해 나가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주여, 당신께서 답이 없으셨던 이유를 이제 알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곧 답이십니다. 당신의 얼굴 앞에서 질문들은 사라져 없어집니다. 그 어떤 다른 답에 내가 만족하겠나이까? 오로지 말, 말 뿐. 다른 말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하여 오는 말 뿐. 오랜동안 진정으로 당신을 증오하였고, 오랜 동안 진정으로 당신을 두려워하였나이다. |
사귐의 기도김영봉 지음/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4년 3월 24일에 쓴 글> |
| 나는 교회를 오랫 동안 다녔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말씀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風月)을 읊듯이 어쩌면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남들 하는 대로 흉내만 내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참 많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 나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싶었고, 어렴풋이나마 그 분의 뜻을 알기를 원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내가 가진 짐들을 내려 놓고 싶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어떤 것이 진정한 기도인지 몰라 기도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읽게 된 "사귐의 기도"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진심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끊임없는 지식으로 충만하기를 구하는데서 시작한다. 기도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게 하기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바람과 생각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되는 도구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귐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모두 들여야 한다." John Wesley 책을 읽다보니 기도에 대한 나의 Misconception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듯하다. 그리고 요즘 나의 기도에는 이런 고백이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하나님, 당신의 선하심을 따라 당신 자신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에게는 당신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닌 다른 것을 당신 만큼 값있다고 생각하고 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아닌 어떤 것을 구한다면 저는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직 당신 안에 있을 때 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Julian of Norwich 솔직히 말해 '그 분으로만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그런 약한 모습까지도 모두 아시고, 나의 그런 고백을 통해 내가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실지도 모른다. 나는 안타까워 하지 않고, 지금의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잠잠히 (Wait Quietly) 기다린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바꿀 수 없는 일들을 평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시고 바뀌어야만 하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둘 사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아멘 Reinhold Niebuhr |
서점에 가서 진열되어 있는 책을 둘러보다 “종이시계”를 발견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시계는 어떤 것일까?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어서 궁금증이 일어났다. 책의 뒷면을 보니 “중년 부부의 결혼과 사랑 이야기”라는 짧은 글귀가 눈에 띈다. 결혼과 종이시계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중년 부부인 아이러와 매기는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매기는 감정적이고 정이 많아 때로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을 그르치는 반면, 아이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결혼 초에는 “우리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기에 들어섰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가던 인생의 중반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슬픔이 밀려온다. 매기는 꿈꿔왔던 결혼과 현실이 달라 슬퍼하고, 아이러는 무능력한 형제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하며 살아와 외롭기만하다.
아이러와 매기의 만남과 결혼. 자유분방한 아들 제시와 야무진 딸 데이지. 아들의 결혼과 이혼. 손녀 딸 리로이를 바라보는 측은한 마음. 아이러와 매기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돌아보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하지만 다른 모습을 이해해주며 눈물을 닦아주고, 외로움으로 굽은 등을 따뜻이 안아주는 사람 부부라는 이름의 아이러와 매기이다.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아이러와 매기의 결혼생활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들의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갈등. 자녀 양육의 문제.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고개를 쳐드는 외로움. 힘든 순간마다 힘이 되는 따뜻한 위로. 문화적 차이를 막론하고 가족애(愛)의 기본적인 모습은 공통적인 것 같다.
젊은 날의 설레이는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이해주는 마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그 자리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고 있다. 함께 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담겨져 있어 즐거움을 주기도 하며, 필요할 때면 자신의 몸을 잘라 쉼터를 제공해 주는 아낌없는 나무말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며 울고 웃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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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풍성하게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이러가 그냥 뒤돌아서 나가버릴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매기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숙여 두 손으로 감쌌다. 매기는 울음을 멈췄다. “아이러?” 그녀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여보, 왜 그래요?” 그녀는 일어나 몸을 굽혀 그를 껴안았다.
그러고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대답은 그의 등이 하고 있었다. 구부정하고, 따뜻하고, 깡마른 등줄기를 따라 마디마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 대답을 먼저 느꼈다. 아이러도 매기와 똑같은 이유로, 매기만큼 슬픈 것이다.
그도 외롭고, 피곤하고, 희망이 없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매기의 어깨 위로 머리를 떨구었다. 그녀는 아이러를 꼭 껴안고, 그의 광대뼈에 얼굴을 문질렀다. 다 잘될 거예요. 괜찮을 거예요. 400페이지
되풀이 되는 쇼라. 계속되는 똑같은 논쟁, 똑같은 비난들. 똑같은 농담, 애정어린 말, 또 결혼을 지키려는 성실성. 위로하는 행동, 따뜻한 말들.이런 것들을 부부가 아니면 그 누가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전혀 잊혀지지 않고,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응어리 또한 있으리라. 매기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이러가 기뻐하지 않았던 일, 장모 앞에서 매기가 아이러를 변호하지 못했던 일...229 페이지
책 표지는 독일 베를린의 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사]이다.책을 가로로 놓고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 보면 파스텔톤 하늘과 대조되어 아주 깊을 것 같은 바닷가의 짙은 청색. 그리고 홀로 바닷가에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검은 옷의 수도사가 보인다. 책 제목과 책 표지에서는 왠지모를 아련함의 느낌이 풍겨져나와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Jonh Bannville의 작품은 처음이었고 그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전혀 없다. 단지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벨문학상과, 공쿠르상, 그리고 부커상 중에서 이 책이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로 책의 첫 글귀는 시작된다. 첫 문장은 짧고 명료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책의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독을 해야 할 만큼 책의 문장과 내용은 간단하지가 않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그 이전의 과거 3가지 시간이 문단의 바꿈없이 동시에 펼쳐지며 수식어가 많이 들어간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혹여나 번역자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Amazon에 들어가 이 책의 원제인 : The Sea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독자들의 평점이 5점 만점에 4점이었고 대부분 John Banville의 수려한 문체와 아름다운 글귀, 그리고 투명하고 담담한 독백에 대한 칭찬을 했다. (수식어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번역하면서 느낌이 약간은 왜곡되긴 하지만 그 문제가 크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John Banville의 문체를 원저로 느껴보고 싶다.
맥스는 아내 애너가 암으로 1년간 투병하고 죽은 후 어린시절을 보냈던 바닷가의 작은 마을 시더스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에게 신처럼 보였던 그레이스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의 이별...
가슴 깊이 뭍어 두었던 그 여름의 바다...
중년이 되어 맞이한 그의 아내 애너와의 이별...
정독을 해서 존 반빌의 문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이 책은 정말 매력적인 책으로 다가온다. 상실감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존 반빌의 소설은 난해하긴 하지만 힘이 있다. 책을 읽고 바다가 품고 있는 두 가지의 의미인 '포용과 소멸' 에 대해 그리고 이것과 연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이 두가지의 의미 속에서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볍게 읽히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모든것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있을 것 같다. 빛나는 가치는 누구에게나 쉽게 보이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 책을 여러번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꽂이 한편에 이 책을 다시 꼽아 놓는다. 언제라도 꺼내어 읽으면 책 표지의 푸른 바다는 어서 오라며 나를 맞이해 줄 것 같다.
[바닷가의 수도사] 그림에 대한 신문기사
경향신문 : 2007년 3월 30일 [천천히 사유하기]무한성의 경험(click!)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지음/세계사 |
| 2007년 6월 2일 서울 국제 도서전에 갔다. 책을 좋아해서 이리 저리 둘러보다보니 박완서 선생님의 사인회가 있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그 남자네 집을 읽고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더욱 좋아하게 되어서인지 그 분을 뵙고 싶었다. 그날 박완서 선생님을 뵙고 친필 사인이 담긴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자식을 잃은 고통 속에서 썼던 일기를 묶어 1989년 성서와 생활에 1년간 연재한 글이었다. 그 슬픔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는지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아니지만 내게도 고통의 경험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을 하시는거에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완서 선생님 역시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하죠?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습니다.' 처음 시작이 그런 절규라면 마지막은 고백은 이렇다. '하나님께 아무리 애걸복걸하여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라도 내 귀가 아집과 독선으로 막혀 있어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글로 맺는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모두 내어드린다. 밑줄 긋기 ----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내게 있는 것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나의 고통까지도. 당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내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 내게 족하나이다. 143 |
세상만물 중 단 한가지라도 불완전하게 만든 것이 없는 창조주가
어떻게 당신을 닮게 존엄하게 만든 인간의 문제를 불완전하게 내버려두겠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잡한 삶의 방정식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은 방정식은 불완전한 거고 반드시 해답이 있을 것이다. 119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
영원히 순화될 것 같지 않은 원색적인 포악이 거침없이 치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의 문제는 나는 무엇일까하는 나의 내면 응시로 귀착되고 만다. 131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한 말씀만 하시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그래, 분명히 뭐라고 그러셨을 거야. 다만 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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